2026 <꿈이 머무는 숲> 전시서문/ 박준수 / 서초구립양재도서관

<꿈엔들 잊힐리야>
                                                                                                               
                                                                                                                                          박준수 


  몽유도원도는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본 이상향을 안견이 그린 한국 회화사의 대표작이다. 현실의 세계를 떠나 꿈속에서 발견한 도원은 오래도록 한국인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의 원형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모든 이상향이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정지용의 시 「향수」 속 화자가 그리워하는 곳 역시 특별한 낙원이 아니다. 실개천이 흐르고, 얼룩백이 황소가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고향의 풍경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꿈속의 도원과 고향의 풍경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둘은 같은 곳을 향한다. 인간이 마음속 깊이 그리워하는 선하고 평온한 장소, 다시 돌아가고 싶은 풍경에 대한 기억이다. 

임현경의 회화 역시 이러한 지점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와 빛,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러나 사진은 단지 참고에 불과하다. 풍경은 눈에 담기고, 마음속에 저장되며, 오랜 시간 머물다가 다시 그녀의 비단 위로 천천히 불려 나온다. 

그의 유토피아는 먼 미래의 이상향이 아니다. 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작업을 구상하며 걷는 집 근처의 산책길, 계절마다 바뀌는 각기 다른 나무의 잎사귀들처럼 일상의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 

서울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임현경의 초기 작업에는 기암괴석과 오래된 나무, 새와 같은 전통 산수화의 어휘들이 등장한다. 화면 속 대상들은 구체적인 장소를 지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과 거리를 둔 상징적 풍경으로 존재한다. 그 안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쌓아온 동양화의 기법과 치밀한 필선, 그리고 비단과 먹, 채색을 다루는 탄탄한 기본기를 발견할 수 있다. 

초기의 작업들이 다소 관념적인 자연의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면,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시선은 점차 자신의 삶과 일상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마음의 정원」, 「Someone’s Garden」 연작에서 등장한 정원은 더 이상 이상적인 자연의 공간이 아니다. 도시의 공원과 가로수, 누군가의 손길로 가꾸어진 나무들, 그리고 그 공간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간들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작가는 정원을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장소로 바라보았고,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관계와 돌봄의 흔적을 발견한다. 

최근의 작업에 이르러 나무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화면 속 나무들은 특정한 장소의 풍경이라기보다 하나의 인간처럼 존재한다. 계절이 다르고, 크기가 다르고, 형태가 다르지만 서로 나란히 서 있는 나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닮아 있다. 때로는 하나의 장막 아래 모이고, 때로는 숲을 이루며 서로를 지탱한다. 작가는 나무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 관계와 연대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특히 최근 연작에서 등장하는 장막은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그것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누군가를 보호하는 천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존재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막처럼 보이기도 한다. 각기 다른 나무들이 하나의 장막 아래 놓이는 순간, 그들은 개별적인 존재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풍경이 된다. 이는 두 아이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며, 일상의 시간을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경험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임현경의 작업 변화는 단순히 소재의 변화가 아니다. 기암 괴석에서 나무로, 정원에서 숲으로, 풍경에서 관계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 놓여 있다. 

동양 철학에서 아름다움과 선함은 분리되지 않는다. 공자는 순임금의 음악을 두고 “아름다움이 지극하고 또한 선함이 지극하다(盡美矣, 又盡善也)”고 말했다. 진정한 예술은 단순한 형식적 아름다움에 머무르지 않으며, 선함과 함께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임현경의 화면에는 이러한 선함이 스며 있다. 그것은 거대한 서사나 극적인 장면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관계,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 가족을 향한 애정 같은 작고 사소한 감정들이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속 엘제아르 부피에는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은 채 평생 나무를 심는다. 그의 묵묵한 행위는 결국 황폐한 땅을 숲으로 바꾸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선함은 거대한 이상이나 구호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매일 반복되는 작은 실천 속에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어 간다. 

임현경의 회화 또한 그러하다. 작가는 매일 산책하고, 기억하고, 바라보고, 그린다. 그렇게 축적된 시간과 시선은 화면 속 풍경이 된다. 

몽유도원도의 도원이 꿈속에 있었다면, 정지용의 고향은 기억 속에 있었다. 그러나 임현경의 유토피아는 현재의 시간 속에 존재한다. 그녀가 매일 걷는 길과 바라보는 나무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이미 도원은 도착해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멀리 있는 이상향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곁에 있었지만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선한 풍경을 다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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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한 사람이 그리는 선한 풍경 

많은 사람들이 이상향을 꿈꾼다. 전통적인 동양화풍에서는 그러한 이상향을 그림으로 남겼다. 조선전기의 대표적인 화가 안견은 안평대군이 꿈에 그린 이상향을 몽유도원도로 남겼다. 그러나 모두가 꿈꾸는 이상향이 아주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임현경의 회화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와 빛, 계절의 변화와 일상의 풍경을 마음속에 담아두었다가 비단 위에 천천히 불러낸다. 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길, 집 근처의 산책길, 계절마다 달라지는 나무의 잎사귀들처럼 그녀의 이상향은 꿈 속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일상 속에 존재한다. 

기암괴석과 동양화풍의 상징적 풍경에서 출발한 작가의 작업은 정원과 나무, 숲과 관계의 풍경으로 조금씩 확장되어 왔다. 화면 속 나무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닮아 있으며, 서로를 지탱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신작에 등장하는 장막은 서로를 이어주고 품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임현경의 작품에는 거대한 서사 대신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 가족을 향한 애정과 같은 작고 선한 감정들이 스며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꿈속의 이상향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곁에 있었지만 미처 바라보지 못했던 선한 풍경을 다시 만나게 된다. 


<추천도서>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정지용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