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히든 위버스 Hidden Weavers》전시서문 / 한원미술관 전승용

임현경 초대전 《히든 위버스 Hidden Weavers》

기획의 글 
                                                                                          전승용 (재)한원미술관 책임큐레이터


 (재)한원미술관은 2026년 첫 기획전시로 5월 14일(목)부터 7월 31일(금)까지 임현경 초대전 《히든 위버스 Hidden Weavers》를 개최한다. 미술관은 그동안 한국 미술계 내 특정 장르의 편향을 지양하고 건강한 예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힘써왔다. 그 연장선에서 이번 전시는 단순히 공간을 제공하는 물리적 지원에 그치지 않고, 큐레이터와의 심층적인 대화를 통해 예술가의 내면적 성장을 함께 도모하는 상호지향적인 플랫폼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이러한 행보는 한국 미술계의 조화로운 발전과 세대 간의 소통을 진작하기 위해 중견작가 지원이 절실하다는 공감대 위에서, 성숙한 미술 환경을 지향하는 (재)한원미술관의 설립 취지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이번 전시는 신진의 가능성이 중견의 단단함으로 안착해 가는 예술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미술관은 창작의 동반자로서 기존 작업을 재조명하고, 작가가 오랜 시간 쌓아온 내공과 완숙미를 정교하게 다듬어 발휘할 수 있도록 변화의 실마리를 함께 모색한다. (재)한원미술관의 이러한 노력은 더 넓고 다채로운 예술 지형을 구축하며, 한국 미술 생태계의 선순환적 세대 연속성을 견인하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나무를 돌보는 사람들 

  정지된 풍경 속에 내재된 숲의 응축된 생명력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모든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재편한다. 임현경이 제시하는 사색의 공간은 자연과 인간을 가르던 오래된 경계를 조용히 허물며,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되묻는다.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을 자연과 분리된 유일한 도덕적 주체로 간주하고, 자연을 인간의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보는 세계관이다. 인간과 자연을 우열의 관계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해 자연을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기능적 자연관으로 그 외연을 넓혀왔다. 가 당연시해 온 전제, 즉 인간은 자연 위에 군림하는 존재라는 믿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인간과 자연은 서로를 지탱하며 공존하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 전환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나무 한 그루를 돌보는 작은 손길에서, 생태적 순환과 상생을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묵묵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첫인상은 대개 차가운 콘크리트, 바쁜 걸음, 빽빽한 건물들이 뒤섞인 무채색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걸음을 늦춰 주위를 살피면, 그 틈 사이로 가로수, 정원수, 공원 숲 등 크고 작은 나무들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임현경이 포착하는 나무들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멀리서 보면 그저 초록빛 덩어리처럼 보일지라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곳에는 누군가의 섬세한 손길이 곳곳에 배어 있다. 나무를 지탱하는 구조물과 쓰러진 가지를 여미는 끈, 겨울을 견디게끔 감싸준 붕대와 여린 생명을 보호하는 천에 이르기까지, 정원은 이렇듯 작고 낮은 돌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모든 사물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온기가 스며 있으며, 임현경은 보살핌의 기척이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를 관통하고 있음을 직관한다. 화면 속에 사람은 등장하지 않지만, 물을 주고 지지대를 세우고 정성을 덧대는 행위들은 그 자체로 돌봄의 표현이자 연대의 지표가 된다. 그의 정원은 부재를 통해 현존을 드러내는, 침묵 속 헌신의 기록이다. 

 전시 제목 《히든 위버스 Hidden Weavers》에서 ‘Hidden’은 우리 곁에 늘 존재해 왔으나 쉽게 드러나지 않는, 숨어있는 행위자들의 손길을 뜻하며, 상호 보완과 연대가 특정 개인의 성취를 넘어 다양한 존재들이 일구어낸 공동의 결실임을 시사한다. ‘Weavers’의 사전적 정의는 ‘베를 짜는 사람들’ 혹은 ‘직공’에 머물지만, 본 전시에서는 그 의미를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회적 관계가 이루는 무수한 접점들의 직조라는 관점으로 확장한다. 이름 없는 이들의 헌신과 사소한 노력, 무의식적인 집단적 행위들이 세상을 엮어낸다는 맥락을 내포하며, 관찰자이자 스토리텔러인 작가는 화면 바깥의 보이지 않는 노동의 흔적을 통해 개인이 아닌 군집된 주체들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함축하여 보여준다. 

 임현경은 만물의 순환과 조화를 중시하는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을 정적인 관조의 대상에 머물게 하지 않고, 현대 도시 풍경 속에서 묵묵히 생동하는 생명체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무언의 위로와 서사로 재해석한다. 전통 산수화가 이상적인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형상화했다면, 그의 작업은 인공의 격자가 드리운 환경 속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우리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기능해왔는지 질문한다. 프랑스의 조경가이자 생태학자인 질 클레망(Gilles Clément)은 저서 『아홉 개의 정원: 지구 정원에 대한 접근(Neuf jardins: Approche du jardin planétaire)』을 통해 지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정원으로, 인간을 그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로 규정했다. 그가 정의하는 정원사는 자연 위에 군림하는 통제자가 아니라, 생태계의 순환 속에서 조화로운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관리자이다. 자연의 자생적인 섭리를 존중하며 변화의 추이를 수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가 꿈꾸는 자연주의 정원(Naturalistic Garden)의 모습이다. 질 클레망(Gilles Clément, 1943~)은 자생적 생명력과 이동을 존중하는 ‘움직이는 정원(Le Jardin en Mouvement)’과 인간의 통제가 닿지 않는 경계지에서 생태적 다양성이 회복되는 ‘제3의 풍경(Le Tiers-Paysage)’ 개념을 바탕으로, 지구 전체를 하나의 정원으로 보살피는 ‘지구 정원(Jardin Planétaire)’의 모델을 제시한다. 임현경의 정원 역시 자연의 화려함이나 완벽한 형태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에게 나무 한 그루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교감하며 세상을 함께 가꾸어가는 조용한 실천의 집약체인 것이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낮 동안 지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빛에 의해 서서히 드러난다. 밤의 정적과 신비로움이 깊어지는 가운데,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는 순간의 안도감 속에서 작가는 밤이라는 시간의 무게와 그 안에서 우리를 비추는 존재에 대해 고찰한다. 낮의 돌봄이 밤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여전히 그곳에 있음을 감각하는 것이다. 숲으로 덮이고 천으로 감싸진 임현경의 정원은 고요한 장막을 만들어낸다. 접히고 펼쳐지는 그 장막은 누군가와 함께 머무는 다정한 공간이 되고, 불완전한 존재들이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이룬 숲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상호 보완과 연대를 통해 회복이 이루어지는 공간. 임현경이 그려내는 정원은 바로 그러한 사유의 장소이다. 

 비단에 먹과 채색을 입히고 앞뒷면을 오가며 색층을 포개어가는 과정은 숲을 거니는 행위와 닮아 있다. 숲에 축적된 시간과 작은 생명들이 서로를 감싸 안으며 어우러지듯, 비단 위로 중첩된 형상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존과 부재를 동시에 드러내며 화면의 깊이를 더한다. 장지에 안료를 쌓던 초기 작업이 수행적 시간의 층위를 보여주었다면, 점차 비단으로 매체를 전환하며 공간감이 감도는 다층적인 표면을 완성한다. 작가는 이 예민한 바탕재 위에 색층을 쌓아 올리고, 미세한 두께의 차이로 평면의 한계를 탈피한 오묘한 깊이와 회화적 묘미를 빚어낸다. 작업 전반에 등장하는 지지대, 당김줄, 붕대와 같은 소박한 매개체들 사이로 우리는 누군가가 돌보는 세상의 풍경을 목격한다. 천에 덮이거나 담장에 둘러싸인 정원은 고립을 벗어난 열린 공간으로서, 그 안에서 우리가 잠시 머물 수 있는 안식의 자리를 마련한다. 

  신작 〈숲을 잇는 시간〉(2026)은 100호 8점으로 구성된 연작으로, 밤에서 새벽을 거쳐 동틀 무렵에 이르는 시간의 궤적을 추적한다. 어두운 밤의 차분한 색채에서 시작해 서서히 차오르는 희미한 빛을 머금은 배경은 하루의 호흡을 시각화하는 동시에, 그 안에 깃든 생명과 보살핌의 지속성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품 속 수목들은 지지대에 의탁한 채 서로 엉겨 붙어 웅장한 장막을 형성하는데, 여기에는 외부로부터의 ‘가림막’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보호막’이라는 이중적 속성이 투영되어 있다. 화면 곳곳에 배치된 관리 도구들은 비가시적인 노동과 섬세한 수고를 환기하며 자연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밀도를 더한다. 작가는 도시 환경 속에서도 의연히 자리한 존재들에게 연민 어린 응시를 보내며, 불완전한 공존이 빚어내는 도시 생태계의 미학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밤의 산책자〉(2025)는 화면 전면에 밀집한 수목들이 견고한 벽을 이루며 그 자체로 독립된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한다. 정밀하게 묘사된 잎사귀와 가지들은 생명체 간의 촘촘한 결속을 시각화하고, 날카로운 직선의 침엽수와 유연한 곡선의 활엽수가 교차하며 만드는 조형적 변주는 화면에 생태적 활력을 불어넣는다. 인공 광원과 자연광의 대비가 만드는 심야의 정경은 주목할 만하다. 가로등의 인위적인 빛은 어둠 속 나무의 질감을 낯설게 부각하며 도시 환경과 자연의 물리적 중첩을 상기시키고, 그 위로 흐르는 은은한 달빛의 농담은 이질적인 두 세계를 하나의 화면으로 포섭한다.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펜스와 지지대는 통제와 보호라는 양가적 의미를 지니지만, 작가는 이를 수직적 방향성과 일치시켜 화면의 조형적 균형을 확보하는 요소로 활용한다. 환상과 현실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새들은 정적인 풍경에 유려한 리듬을 부여하며 숲의 순환을 일깨운다. 절제된 채색과 치밀한 필선으로 채워진 밤의 숲은, 소란스러운 도시의 소음 뒤편에서 제 자리를 지키는 생명들의 숨결을 마주하는 사색의 통로가 된다. 

 〈숲의 장막〉(2024)은 좌우로 길게 늘어진 천의 흐름을 통해 숲을 하나의 안전한 무대이자 보호된 내부 공간으로 설정한다. 비단의 반투명한 화면 위에 정교하게 배열된 수목들은 자연의 야생성보다는 정돈된 정원의 형상을 드러내며, 배경의 기암괴석과 분수가 만드는 고전적인 풍경과 결합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숲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쉼터를 설계해 나가는 것이다. 한편, 〈Sky in the Garden〉(2012)은 정원 한가운데서 하늘을 조망하는 시선을 담아낸 작품으로, 재료의 물성을 향한 작가의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 중요한 변곡점이다. 주변부를 채운 바위와 나뭇가지의 테두리는 관람자를 자연으로 인도하는 서정적 장막이 된다. 특히 화면 중심의 원형 하늘은 숲 가운데 시각적 숨통을 틔워내며 화면 전체에 공기감을 불어넣는다. 작가는 이로써 자연을 몸으로 느끼는 '체험의 장'으로 확장시키고, 작품 이면에 흐르는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낸다.

 우리는 임현경의 달빛 아래 정원 앞에 선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나무들과 천으로 둘러싸인 포용의 공간. 비단 너머로 아련히 비쳐 보이는 또 다른 풍경. 그곳은 돌봄과 연대의 은유이자 보이지 않는 손길이 만들어낸 아늑한 공간이다. 장막처럼 접히고 펼쳐지는 정원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비로소 시선을 나누게 된다. 그 대상은 나무를 돌보는 정원사이거나, 우리 자신, 혹은 이 세상을 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일 수도 있다. 임현경은 일상에 숨겨진 돌봄의 자취를 발견하고, 그 정원 안에 나란히 기대어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반추할 수 있는 자리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번 전시는 속도에 매몰된 도시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느릿한 보폭으로 보이지 않는 손길들과 새롭게 관계 맺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 걸음 끝에서, 불완전한 존재들이 이룬 연대의 온기를 천천히 감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